오월추모비 앞에서...

경제무역학부 97 고청훈

가 처음으로 최덕수 열사를 알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용범이 형(現 추모사업회장)을 만나고 부터 추모사업회를 알게 되었고, 거의 끌려오다시피 했고, 솔직히 마음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고민도 많이 했지만 한번 시작한 일이니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으로 부딪쳤다. 사실 일을 시작한다고 했지만 아는 것이 없었다. 열사가 누구며, 어떤 일을 했으며, 또 내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대학생활에 익숙하지도 않은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렇게 며칠뒤 우연히 열사 분신 항거일지를 보게 되었다. 그것을 보면서 느낀 것은 내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잘못된 역사와 자신들의 생존권을 찿기 위해서 거리로 나왔던 많은 학생,시민들에 대해 폭력정권은 총을 발포하고 사건을 축소 은폐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목숨을 걸도 무장계엄군과 맞서 무장을 하고 싸웠던 그들을 역사는 빨갱이라 몰았다. 어떤 책인지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글을 보았다.
미국의 보스턴 대학살 사건은 군인의 발포에 의해 죽은 이가 5명인데 그 사건을 대학살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천 명이라는 무고한 시민,학생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를 쿠데타라 하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후 정권이 바뀐 뒤 그들의 죄를 논했지만 정확한 진실을 밝히지 않고 쿠데타를 항쟁으로 바꾼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된지 정확히 8년뒤 진상규명을 하지 않는 노태우 정권에 대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진상규명을 외치며 분신을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가 최덕수 열사이고 그때의 나이가 지금의 내나이와 동년배인 것이다. 그 나이에 그런 생각들을 하고 분신까지 했는데 나는 무엇을 했고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니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생각됐다. 이때 전두환,노태우등 5.18전범들의 이기적 행동에 대해 역사는 그들을 죄인이라 한다는 언론의 보도를 보았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유난히 관심이 많던 나는 대중매체를 통해 무엇가 마무리 지어지지 않은 미심적은 판결이라는 생각을 했다. 5.18 광주 항쟁보다는 12.12 쿠데타에 중점을 맞춰서 판결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5.18 및 12.12 사건 주범들의 판결이 내려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범들의 사면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어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 아무리 그들이 공로가 크다하더라도 2000여명을 죽인 그들을 어떻게 용서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추모비 앞에 서서 비록 미흡하지만 역사는 그들을 죄인이라 했느니 이젠 편히 눈감으시라고. 이제 남은 일들은 살아남은 우리가 하겠노라고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