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항거일지

故 최덕수 열사 분신항거일지

5월 17일

  • 광주영령 추모식에서 광주항쟁성명서 제작, 낭독.

5월 18일

  • 10:50 현 추모비 앞에서 "광주학살 진상 규명하라!" "국정조사권 발동하라!"를 외치며 분신.
  • 11:00 학우의 승용차로 순천향병원으로 급송.
  • 11:10 순천향병원 도착. 전신에 45% 3도 화상 입음. "광주항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광주를 잊지 말자"라고 계속 당부함.
  • 13:00 응급처치후 3층 중환자실로 옮김.
  • 13:40 대운동장에서 운영위원회 긴급 소집. 축제 무기한 연기 결정.
  • 15:20 대운동장에서 재학생 2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비상총회 개최. 병원과 교내에서 최학우 분신에 따른 철야농성을 갖고 앞으로의 대책을 강구하기로 결정. 민가협 어머니 방문.
  • 16:50 200여명의 학생 "덕수 뜻 계승하여 군사독재 타도하자"며 치대앞으로 진출.
  • 17:20 최학우 순천향병원에서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김
  • 19:00 인문대 강의실과 학생회관에서 100여명의 학생이 덕수학우의 뜻을 따라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들어감.
  • 19:15 최덕수 학우 한강성심병원에 도착. 양캠퍼스 160여명 병원앞 주차장에서 철야농성.
  • 19:30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5명 병원에 도착.
  • 22:30 '최덕수 분신 대책위원회'구성 및 대책 논의

5월 19일

  • 12:20 '최덕수 동지 정신계승 1차 실천대회'가 천안캠퍼스 시계탑 앞에서 200여명의 학우가 모인 가운데 개최(카톨릭농민회, 충청지역 노동조합협의회 관계자 방문연설)한 후 인문학관, 학생회관에서 100여명 철야농성.

5월 20일

  • 15:20 양캠퍼스 '병원현장 대책위원회'구성. 병원 경비 및 대외홍보 작업 전개.
  • 16:00 서울캠퍼스 대동제 무기한 연기.
  • 16:45 김종백 주치의 "불기운이 기도를 거쳐 허파로 들어가 현재로선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다"고 밝힘.
  • 19:50 최학우 "투쟁은 선택적이고 비판적으로 하라"고 당부.

5월 21일

  • 09:00 최학우 방사선 치료 받음.
  • 13:10 교직원 출퇴근 버스로 서울 병원으로 가던 분신대책위원회(천안)임직원등 11명 천안 톨게이트에서 천안경찰서로 연행.
  • 15:30 한남캠퍼스에서 집회를 마친 120여명의 학우들이 KBS방송국 앞에서 공정보도를 촉구하며 항의 농성함(서울캠퍼스 이재신 부총학생회장 공개사과 요구 및 경과 낭독)
  • 17:20 최학우 물대신 죽을 조금 먹음.
  • 18:20 현장대책위 임원 일부교체. 위원장 천안으로 내려감. 새로운 지도부 결성.
  • 23:10 최학우 입술부위의 부기가 빠져 작은 소리로 말을 함.

5월 22일

  • 12:30 최학우 쌀죽, 토마토를 약간 먹음. 또한 곡목을 알 수 없으나 투쟁가를 중얼거림.
  • 13:00 천안경찰서로 연행된 대책위원회 임원진 등 11명 모두 석방.

5월 23일

  • 11:00 범단국 공동대책위원회 구성(위원장 김건)
  • 15:00 천안캠퍼스 대책위원회 구성(위원장 박상만)

5월 24일

  • 11:00 최학우 악화. 특수 중환자실로 이송.
  • 15:00 최학우 내시경 검사. 얼음, 방사선 치료받음. '최덕수 분신항거 계승 및 광주학살원흉 처단을 위한 범단국 1차 대동궐기대회'개최(서울).

5월 25일

  • 13:00 민속극연구회(천안)의 '광주는 살아있다'가 인문학관 앞에서 공연.
  • 14:00 '최덕수학형 정신계승을 위한 천대협 실천대회'가 재학생 1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서울캠퍼스 2차 대중궐기대회 개최.

5월 26일

  • 04:00 최학우 호흡장애. 병세악화.
  • 04:50 최학우 부친 병원 도착.
  • 10:00 일시 호흡중지. 기도수술후 인공호흡실시.
  • 12:00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중지. 충격요법으로 심장이 다시 박동.
  • 13:30 최덕수 학형 운명.
  • 17:00 최학우 운명 소식을 들은 학우 수백명이 병원으로 집결.
  • 19:00 장례준비위원회 구성(위원장 이부영)
  • 19:25 유가족 성명서 발표
  • 22:25 운구 위원단 구성(단장 김진호)

5월 27일

  • 03:30 장례준비위원회는 최학우의 장례가 민주국민 5일장으로 치루어지며 장지는 망월동이라고 공식 발표.
  • 11:20 최학우 유해 한강성심병원 출발.
  • 13:00 최덕수 학우 유해 서울캠퍼스 도착. 학생회관 301호 여학생휴게실에 빈소설치.천안캠퍼스 대운동장에서 1500여명 '최덕수 열사 1차 추모대회'거행.
  • 13:50 서울캠퍼스 2000여명 노천마당에서 '최덕수열사 1차 추모대회'거행.
  • 16:30 천안학우들 버스 12대에 분승 한남캠퍼스로 향함.
  • 19:00 장례위원회 구성(위원장 문익환)

5월 28일

  • 11:20 서울캠퍼스 '최덕수 열사 2차 추모대회'가 노천마당에서 1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

5월 29일

  • 17:00 '최덕수열사 투쟁계승 및 광주학살 원흉처단 범국민대회'가 문리대 대운동장에서 1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 이후 횃불시위 전개.

5월 30일

  • 08:00 서울캠퍼스 노천마당에서 각계인사 1백여명과 학생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중해방열사 故 최덕수 민주국민장'거행
  • 12:20 '최덕수열사 2차 추모집회'가 천안캠퍼스 대운동장에서 4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림.
  • 15:00 총학생회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천안캠퍼스 인문학관 앞에서 노제 갖음.
  • 16:20 오룡성당 입구에서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천안시내 노제 갖음.
  • 19:55 모교인 배영고등학교 교정에서 정주시민, 후배 등 2천여명이 감가한 가운데 노제 거행.
  • 22:20 광주도청 분수대에서 '故 최덕수열사 광주노제'가 시민, 학생 등 3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
  • 23:45 망월동 묘역 도착.
  • 23:59 '5·18희생자 제 3묘역'에 각계 인사, 시민, 학생 등 5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故 최덕수 열사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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